내가 살았던 도시가 멕시코의 큰 공업도시이다 보니 멕시코인이 아닌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엔 교환학생 프로그램 때문에 전 세계의 외국인들을 만나볼 기회가 많았고, 그렇게 외국인들의 여러 커뮤니티가 생겨날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과 아파트를 셰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교환학생들끼리 혹은 어학연수를 온 학생들끼리 아파트를 셰어 하는 경우가 더 쉽고 흔한 경우였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이 공업 도시는 큰 대학이 두 개가 있긴 하지만 멕시코 마피아들의 세력 다툼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인명피해가 늘어나면서 교환학생 수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이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외국인들은, 멕시코에 아예 자리를 잡고 비즈니스를 하는 외국인들, 혹은 출장으로 온 미국인들을 잠시 스쳐 지나가듯이 볼 수 있는 도시로 변질되었다. (유럽인보다는 미국인이 대체로 많고 혹은 그냥 콜롬비아 혹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학생신분의 외국인보다는 사회인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연령대가 젊어야 30대 중반 혹은 40대의 외국인들이 모임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비즈니스 네트워킹에 훨씬 더 가까운 모임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 틴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멕시코 남자들을 제외한 내 또래의 외국인을 만나는 방법은 틴더 혹은 카우치서핑에 국한되었기에, 나에게 소개팅 앱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애증의 수단이었다.
내 멕시칸 룸메가 카우치서핑의 지역운영자였고 나도 종동 그 모임에 함께 동반하곤 했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기는 했지만, 그곳에 참석한 외국인이라고 하면 거의 여행자가 대부분이었고 라틴계 사람들이라서 뭔가 딱히 호기심이 드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왜 내가 더 이상 라틴계 사람들과 데이트를 안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틴더에서 내 또래에 출장 혹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외국인들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가웠다. 데이트를 떠나서 뭔가 외국인들끼리 이 삭막한 공업 도시에서 느끼는 점을 공유하고 싶었달까. 항상 스페인어만 쓰는 생활에도 조금 싫증이 나긴 했고 (스페인어는 정말 애증의 언어) 스페인 교환학생 시절에서 느꼈던 유럽인들과 함께하는 소통이 너무도 그리웠다.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바로 Big D 도미닉이다. 도미닉은 독일사람으로 내가 앞서 언급한 대학교에서 여름방학 강좌를 맡게 되면서 대학교 초청 강사로 멕시코에 왔는데, 이미 두 번째로 초대받아서 왔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도 이 도시에 오는 유럽인들이 있구나'하는 생각에 꽤나 신기했고 그와 문자를 주고받는 게 꽤나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꾸밈이 없는 그의 프로필 사진이 좋았고, 독일 사람의 수수함이 느껴졌달까. (시간이 지나 느낀거지만 독일사람 혹은 독일남자들 중 꾸밈없고 심플하고 순수한 감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도미닉의 첫인상은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소년미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너무도 무료한 금요일 날 갑작스럽게 성사된 만남이라 설레는 마음이라기 보다, '심심했었는데 잘 됐다!' 하는 마음에 내가 좋아하는 바(Bar)로 그를 불렀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도 이 도시에서 무료함을 느끼던 찰나였고, 그래서 틴더를 시작했는데 역시나 많은 여성들에게 러브콜을 받았고, 사실 그 전날에도 다른 여성들과 춤을 추러 갔다고 했다. 이렇게 투명한 대화가 오가는 게 신기했고, 싫지 않았다. 남자로서의 끌림보다는 외지인 대 외지인으로서의 대화에서 이상한 '연대감'같은 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 그에게 어떠한 기대감도 없었고, 그냥 그와의 대화가 나쁘지 않았고 무료한 금요일 밤에 함께 술을 마실 상대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냥 바에서 술이나 마시고 이야기하다가 각자 집에 돌아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달까.
사실, 그 날밤의 대화는 외지인과의 대화라는 것 외에 딱히 인상적일 것도 없었는데 그에겐 달랐던 것 같다. 술을 마시고 우버를 나눠탔는데 그가 내 어깨에 기대더니 수줍은 듯 키스를 먼저 건넸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외국인이 순수하면서도 수줍게 키스를 하는 모습에 좀 놀랬었다. (마초 감성에 젖어있는 멕시코 남자들과 꽤나 다른 섬세한 느낌이랄까)
나도 그의 키스를 받아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각자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문자를 통해 대화를 더 자주 이어갔고 두번 째 만남에선 자신이 초대 강연을 하고 있는 대학교에서 배정받은 사무실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학교로 초대했다. (사실 이 학교는 이 도시에서 가장 등록금이 비싼 사립 대학교로 알려져 있는데, 대학교 내부로 들어가면 공작새와 노루가 학교 녹지에서 한적하게 거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날 밤은 날씨가 참 선선했고, 그의 사무실부터 교내 캠퍼스까지 너무 아름다웠고 저녁이 되면서 교정의 조명이 주변을 밝혀주면서 묘하게 로맨틱한 분위기까지 형성되었다. 마음은 한껏 들뜨면서 그와의 그 순간이 너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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