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살로와는 그렇게 첫 번째 데이트를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감기에 걸려 몸이 꽤 안 좋아졌었다. 곤살로가 마음에는 들었지만 자신만의 섹시한 감성이 있는 친구? 정도였고 아부엘로 남은 멕시코 시티로 출장을 가고 별로 연락이 없었기에, 나는 그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감지도 안되었고 그냥 '다 정리해버려야지'라는 마인드였다.
그렇게 회사일이 끝나면 집에서 쉬는 날들이 이어졌는데, 하루는 곤살로가 집에 찾아와 스시를 만들어줬었다. (사실, '스시는 사 먹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깨준 사람이 곤살로였다) 그냥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놀러 와서 스시를 만들어 주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기도 했고, 무심한 자상함 같은 게 느껴져서 그때부터 곤살로에게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곤살로의 '츤데레' 같은 매력이랄까.
그렇게 곤살로와 메세지를 보내고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부엘로 남이 나를 찾아왔을 땐 더 이상 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겠구나 싶어서 종지부를 찍었다. (+ 기억은 안 나지만 아픈 나에게 뭔가 되게 신경 거슬리는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곤살로와의 만남은 그가 자신의 세계에 초대하고 나는 그 세계를 탐험하는 방식이었다. 그의 집에는 그가 만들어 놓은 '영화방'이 있는데, 작고 아늑한 아지트 같은 곳이다. 정원 옆에 만든 방인데,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그곳에서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잠이 들기도 하는 장소다. 참 아늑하기도 하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뒷문이 있어서 곤살로의 부모님이나 형제들과 마주치지 않고 영화만 보고 몰래 나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무비 나잇을 계획할 때면 '와인' + '살라미'를 들고 영화방으로 들어가 영화를 즐기곤 했다.
곤살로와 그 당시에 마음이 맞는다고 느꼈던 것은, 그도 '요란스러운 산페드로녀들'에 지쳐있었고, 나는 '섹스를 추종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진지한 관계를 추종하지 않는 애매한 위치'에서 틴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곤살로와 같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재미있었다. 나는 곤살로가 되게 문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대였고,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더 알아가고 싶어 하는 우리 둘 사이의 캐미가 나는 참 좋았다. 또한, 그 당시 나는 꽤나 시니컬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행복해!' 혹은 '인생은 멋져!', '삶은 축복이야!'를 외치는 주변 멕시코 친구들에게 좀 지쳐있었다. 나에겐 현실적이지 않은 세계관을 자꾸 옆에서 듣고 있자니 한 편 가소롭게 느껴지기도 했고, 때 마침 곤살로는 나보다 더 시니컬하고 다크한 사람이었기에 나와 드디어 비슷한 사람을 만났구나!라는 동질감 및 안도감마저 느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유일하게 다크 했는데 더 이상 혼자가 아니란 느낌을 받았달까..)
그렇게 우리는 자조적이고 다크한 이야기로 대화를 채워갔고, 나는 동질감을 즐기는 한 편, 산페드로의 세계를 엿보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와의 섹스가 짜릿했기에, 우리의 관계가 더 핫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곤살로와 관계를 정의할 생각이 없었고, 그도 이를 원할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기에 끊임없이 틴더에서 스와이핑을 하며 다른 남자들과도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마 그 당시의 나는 곤살로와의 짜릿한 만남이 나를 채워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감지했던 것 같다. 틴더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인생에서 뭘 원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나는 마음이 공허했고, 그 공허함을 곤살로를 비롯한 다른 남자들과의 공허한 이야기로 채워가는데 바빴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모습을 시종일관 유지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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