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광인 곤살로와 함께 하면서 주옥같은 영화들 혹은 미드, 영드를 알게 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작품들이라든지 혹은 넷플릭스의 'Bojack Horseman'과 같은 미드가 가장 뇌리에 남고 지금은 나의 최애 미드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왕좌의 게임은 곤살로의 '영화방'에 들어가면 어느새 필수 시청 드라마가 되어서 반강제적으로 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곤살로가 아니었으면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았을 것 같다. 단지 영화나 미드를 볼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건, 곤살로는 영어를 잘해서 영화를 무자막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난 영어자막에 의지해서 봐야 하는데, 정말 딕션이 빠른 영화나 미드는 시청이 아닌 몇 시간 동안 자막만 리딩하는 느낌이어서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덕분에 영어로 된 영화 시청 스킬이 많이 늘었지만...)
곤살로와의 만남은 참 복잡 미묘했다. '시니컬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 '내가 속하지 않았던 멕시코 부유층의 남성', '항상 위태로운 듯한 섹시함을 지닌 썸남', '쿨한 느낌을 포기할 수 없는 어린애 같은 나와 그'이런 미묘함으로 시작된 관계라고 할까? 사실, 난 이 관계의 '쿨함'에 빠져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서 그랬겠지만, 그래서 곤살로에게 더 끌렸었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물 흘러가듯이 따라가면서도, 사실은 그에 대한 소유욕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를 떠날 생각도 없었다. 그러면서 난 다른 틴더 남들과 여전히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고, 나의 스와이핑은 멈출 줄 몰랐다.
어느 날 난 우리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곤살로를 초대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곤살로를 나의 공식 썸남으로 소개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냥 키 크고 잘생긴 그를 새로운 썸남으로 데려와서 보여주고 싶은 심리가 컸던 것 같다. 그 파티에 참석한 친구들은 내 친구였다기 보다 내 멕시코 룸메 친구들로 그들 사이에서도 연애 관계가 항상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곤살로를 초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적었다. 하지만 내심 곤살로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친구들도 그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날 나는 유독 피곤했고, 술을 충분히 마셔서 그런지 파티 도중 홀로 내 방으로 들어왔다. 몇 시간 뒤 곤살로는 언짢은 표정으로 내 방으로 따라 들어왔는데, 거실에 깜박한 내 핸드폰에서 틴더남들의 문자를 곤살로가 봤던 것이었다. 그리고 곤살로는 내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는 게 싫다며, 내가 자신만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나를 썸녀 이상으로 봐준 곤살로에게 고마워서 알겠다고는 했지만, 곤살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 이유에는 그의 돈 소비 습관, 항상 와인을 달고 살고, 밤문화를 자주 즐기는 그의 생활 패턴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름 그와의 Exclusive 썸을 전제로 만남을 지속했는데,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첫 번째 사건은 'Boda No Boda'사건이었다. Boda No Boda는 '결혼 없는 결혼식'이란 뜻으로 결혼을 앞둔 한 멕시코 여성이 파혼을 하게 되어, 예식장을 캔슬하지 못해 결혼식을 파티 형식으로 전환했고 사전에 티켓을 구매한 사람만 올 수 있는 고급 파티였다. 재미있는 컨셉의 파티여서 룸메를 비롯한 친구들과 티켓을 구매해서 파티에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던 과정에서 나는 곤살로를 초대하게 되었다. 딱 여기까진 괜찮았는데, 곤살로의 사촌이자 내 친구들에게 평판이 안 좋은 A를 곤살로가 초데려오려고 했는데, (세상 참 좁다) 평판이 안 좋은 A를 초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과정이 술에 취한 곤살로의 말실수로 A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A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 사건에서 술만 마시면 항상 경솔해지는 곤살로의 모습에 크게 실망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남자 뺨을 때려본 듯..) 그리고 심지어 술로 인해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는 그를 보면서 (사람들을 때리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말싸움에 엮이고 화를 제어를 못해서 벽을 친다든지 팔목을 강하게 잡는 등) 우리의 관계는 끝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또한, 퇴근 후 항상 술을 먹는 습관 말고도 주말이면 항상 친구들과 술 약속을 잡곤 했었는데. 그와의 만남에서 낮 데이트는 정말 손에 꼽았던 것 같다. 항상 술이 빠지지 않는 데이트는 더 이상 나에게 짜릿하지 않았다. (그와 있으면서 멕시코의 숙취해소 음식을 더 많이 배우게 된 것 같다.) 그의 다크한 휴머와 시니컬함은 나를 더 어둡게 만들었고, 우리 둘 다 모두 매몰되는 느낌은 나 혼자만 받았을지 그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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